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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타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작가와 세 권의 책

2026-08-03 기준 정보입니다.

조용한 서점의 나무 책장에 꽂힌 추리소설들

책장 앞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다가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하면, 그 작가의 신작이 계속 나올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곤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제게는 그런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타계 소식은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2026년 7월 23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8세였습니다. 출판사와 공식 계정에서 소식이 전해진 뒤 여러 매체가 이를 보도했는데, 오랫동안 그의 소설을 기다려 온 독자라면 저처럼 마음 한쪽이 허전했을 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The Japan Times, Nippon.com)

공학도에서 대표 추리소설가로 이어진 길

195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기술자로 근무했던 조금 특별한 이력을 지녔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소설을 쓰던 그는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이듬해 회사를 떠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쓰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비밀》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고,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멈추지 않고 써 온 시간이 그의 작품만큼 인상적이네요.

그의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재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치밀한 사건 안에 사랑과 질투, 죄책감과 가족애를 겹쳐 놓고, 평범한 사람이 어떤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지 집요하게 바라봅니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인물의 마음이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백야행》과 《악의》처럼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깊이 파고든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신참자》와 가가 형사 시리즈처럼 사건 주변 사람들의 삶을 세심하게 비추는 소설도 있습니다. 과학적 발상과 논리를 앞세운 갈릴레오 시리즈, 따뜻한 판타지에 가까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까지 작품의 온도도 무척 넓습니다. 어느 한 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예요.

스포일러 없이 권하고 싶은 세 권

제가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은 《가면산장 살인사건》입니다. 외딴 산장에 모인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되며, 제한된 공간과 서로를 믿기 어려운 상황이 팽팽한 긴장을 만듭니다. 문장 곳곳에 놓인 단서를 따라가며 읽는 정통 미스터리의 재미가 선명합니다.

이 책은 줄거리를 미리 많이 알수록 재미가 줄어드는 작품이라, 자세한 설명 없이 펼치는 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작은 어긋남을 기억해 두면 마지막까지 훨씬 흥미롭게 읽혀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구성력을 가볍고 빠르게 만나기 좋은 한 권입니다.

두 번째는 《방황하는 칼날》입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가해자를 향해 움직이면서, 복수와 처벌 사이의 무거운 질문이 이어집니다. 범죄를 다룬 소설이지만 단순한 추격극보다는 피해자의 고통과 법이 닿지 못하는 자리를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읽는 동안 누구의 선택이 옳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고,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며, 사회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대하는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가볍지는 않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만나고 싶다면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입니다. 오래된 잡화점에 숨어든 세 사람이 시간을 건너 도착한 고민 편지를 받고, 얼떨결에 답장을 쓰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각기 따로 흘러가는 듯한 사연들이 조금씩 맞닿는 과정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매력입니다.

추리소설의 날카로운 긴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 주는 일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 줍니다. 평소 미스터리를 즐기지 않는 분도 편하게 읽기 좋으며, 누군가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고 싶을 때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세 권 가운데 가장 다정한 책이에요.

마무리, 남겨진 이야기와 이어지는 독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교한 수수께끼를 만드는 작가이면서도, 그 안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범인이나 반전만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감당해야 했던 선택과 그 뒤의 쓸쓸함까지 함께 남습니다.

《가면산장 살인사건》에서는 치밀한 구성의 재미를,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묵직한 사회적 질문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사람을 잇는 온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 작품의 분위기는 서로 다르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넓은 시선을 고르게 보여 줍니다.

더는 새로운 작품을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남겨진 책은 독자가 펼칠 때마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서두르지 말고 한 권씩 만나 보세요. 그것이 오래 사랑한 작가를 기억하는 조용하고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상황에 대한 전문적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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